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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발원지 인도에는 왜 불교가 쇠퇴하였나?

by 양촌에서 202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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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사진

불교는 소승불교 대승불교 라마불교로 크게 나누어집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나누어 졌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원전 4세기경 인도에서 찬드라굽타가 마우리아 왕조(BC 317∼BC 180)를 탄생시킵니다.

찬드라굽타는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를 침공했을 때 전투에 참여했던 인물이며 찬드라굽타는 이름이고 성은 마우리아입니다.

그런데 마우리아 왕조 3대 왕인 아쇼카 왕이 유명하지요.

그의 아버지는 101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아쇼카는 왕이 되기 위하여 불교에 귀의한 1명의 동생을 뺀 나머지 99명의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릅니다

재위기간 중 인도 일부 남부 지역을 제외한 전 인도지역을 정벌하여 인도 최초의 통일왕국을 이룩합니다.

그런데 정벌전쟁중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것을 반성하여 불교를 국교로 삼고 살려둔 동생으로 하여금 스리랑카등 주변국에 불교를 전파하게 합니다.

동남아시아가 대부분 소승불교를 믿는 이유입니다.

 

아쇼카 왕 사후 반세기가 지난후 마우리아 왕조는 멸망하고 인도는 다시 크고 작은 여러 나라들로 나뉘어지는데 이를 다시 통일한 왕조가 쿠샨왕조입니다.

쿠샨왕조(78년~226년)는 중앙아시아에서 인도 북서부에 이르는 커다란 제국을 이루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인도를 재통일 했다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네요.

쿠샨왕조는 월지족 5개 종족중 귀상족이 세운 나라이며 쿠샨은 귀상에서 나온 말입니다.

월지족은 원래 중국 둔황근처 하서회랑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웠던 민족인데 기원전 2세기경 월지에 인질로 잡혀 있다가 탈출한 모둔(묵특)선우의 흉노족에게 땅을 빼앗기고 서쪽으로 쫒겨 이동하여 박트리아를 멸망시키고 후에 쿠샨왕국을 세우게 됩니다.

쿠샨왕조에서도 3대 카니시카왕이 유명한데 이사람이 불교를 중흥시킵니다.

그런데 마우리아 왕조는 소승불교이고 쿠샨왕조는 대승불교입니다.

소승불교는 개인구제이고 대승불교는 중생구제지요.

소승불교였던 인도의 불교가 쿠샨왕조에 의해 대승불교로 바뀌면서 아프가니스탄 이란 우즈베키스탄 위구르지역을 거쳐 중국으로 전파됩니다.

중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그래서 대승불교인 나라는 중국,한국,일본뿐이지요.

 

중국에서 세를 키우던 대승불교는  당나라 시기에 번성을 하게 되는데 당태종 때 토번(티벳) 송찬캄포의 침입을 받습니다.

당태종 이세민은 문성공주를 송찬캄포에게 시집을 보내 전쟁을 피하고 두나라 사이에 오랜 우호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문성공주는 시집갈때 불교를 가지고 갔지요.

문성공주가 가지고 간 대승불교가 원래 티벳지역에 있었던 토속민간신앙과 결합해서 라마불교가 됩니다.

송찬캄포는 문성공주를 위해서 라싸에 포탈라궁을 짓습니다.

이 라마불교가 몽골에도 전파가 됩니다.

일본에 간 대승불교는 토속신앙과 결합해서 신도가 되고 티벳에서는 라마불교가 되는 거지요.

 

그런데 정작 불교의 오리지날 생산지인 인도에서는 지금 대부분이 힌두교를 믿고 있읍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인도에서 쿠샨왕조가 멸망한 뒤 다시 굽타왕조(320~550년경)가 인도를 통일하게 됩니다.

굽타왕조를 세운 사람은 찬드라굽타 1세인데 찬드라가 이름이고 굽타가 성입니다.

마우리아 왕조를 세운 찬드라굽타는 찬트라굽타가 이름이고 마우리아가 성이고요.

헷갈리시는 분이 많지요.

굽타왕조에서도 3대왕인 찬드라굽타 3세때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생각해보니 이민족인 쿠샨왕조에서 믿었던 대승불교를 믿는다는게 자존심이 상했나 봅니다.

굽타왕조는 고대인도부터 있었던 카스트 제도를 기본으로 하는 브라만교와 인도의 전통 민간신앙을 결합시켜서 힌두교를 인도의 종교로 만듭니다.

여기서 보면 3대들이 큰일을 하고 있는데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3대째에 들어 큰일을 하거나 전성기를 밎는경우가 많더군요.

로마시대 이후 북유럽을 통일한 샤를마뉴 대제도 칼마르텔의 손자이고 쿠빌라이도 징키스칸의 손자이며 에도막부 기초를 단단히 한 도쿠가와 이에미쓰도 이에야쓰의 손자인 것을 보면 격세유전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말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사실 힌두교와 마찬가지로 불교나 자이나교도 브라만교에서 나왔다고 볼수 있는데 힌두교는 브라만교의 카스트제도를 그대로 받아 들였고 불교나 자이나교는 카스트제도를 반대하고 만인평등을 주장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윤회의 개념은 다 같이 받아들였습니다.

불교와 자이나교는 비슷한 시기에 시작됐는데 교리는 거의 비슷하지만 자이나교가 불교보다 훨씬 더 엄격한 수행을 요구하기 때문에 자이나교의 확장 전파에는 어려움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인도 펀잡지방에서 유행하는 시크교는 힌두교와 무굴제국이 가지고 온 이슬람교를 혼합해서 15세기에 나나크가 만든 신흥종교인데 여기도 민인평등입니다.

종교도 진화하는가 봅니다.

아무튼 불교의 창시자 싯다르타의 고향인 인도와 네팔지역은 지금 불교보다는 힌두교가 대세입니다.

 

그러면 대승불교를 만든 쿠샨왕조의 지역인 중앙아시아 지역은 어떻게 됐을까요?

쿠샨왕조는 파르티아를 멸망시킨 사산왕조 페르시아(226년–651년)에 의해 역시 멸망당합니다.

사산조 페르시아는 조로 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았으며 흔히 불을 숭배한다하여 배화교라고도 합니다만 불을 숭배하는 것은 아니고 종교의식에 불이 사용되므로 불을 중요시 하는것 뿐입니다.

조로아스터는 기원전 7세기경의 사람이름인데 기원전 2000년경부터 내려오는 마즈다교의  교리를 확립한 사람으로서 그 이후 마즈다교가 조로아스터교라고도 불리게 됩니다.

조로아스터는 그리스식 발음이고 원래 이름은 짜라투스트라이며 니체의 저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짜라투스트라입니다.

조로아스터교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아무튼 대승불교를 만든 쿠샨왕조 지역 사람들은 사산조 페르시아 이후 조로아스터교를 믿게 됩니다.

그런데 서기 640년경에 사산조 페르시아가 사라센 제국에 멸망하면서 이지역 사람들은 다시 이슬람교를 믿게 되지요.

이 이슬람교는 중앙아시아는 물론 나중에는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시시아 지역까지 전파가 되는데 먼 훗날 인도와 파키스탄,방글라데쉬로 나뉘게 되는 원인이 되며 지금은 캐시미르 분쟁의 불씨를 남겨 놓았습니다.

 

아무튼 이리하여 동남아는 소승불교, 중국과 한국은 대승불교, 일본은 대승불교계 신도, 티벳과 몽골은 라마불교를 믿게 되었는데 정작 오리지날 불교 창시지역인 인도지역은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믿고 있읍니다.

종교의 전파는 국가와 종족의 흥망성쇠와 관련이 깊네요.

 

아까 조로아스터교 얘기가 나왔는데 사실상 유일신 개념을 최초로 정립한 종교가 조로아스터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모태가 되는 유대교가 조로아스터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유일신 개념은 물론 천사와 악마,천당과 지옥의 개념은 물론 노아의 홍수 이야기도 다 조로아스터교에서 차입해 온 교리로 보고 있읍니다.

고대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대국으로 분열된 후 북이스라엘이 먼저 앗시리아에 멸망 당하고 기원전 600년경 유대왕국도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게 멸망을 당하면서 유대인들은 약 50여년간 바빌론에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바로 이 바빌론 유수의 시기에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믿고 있었던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를 많이 배우게 되고 나중에 유대역사인 구약을 집필시에 조로아스터교에서 차용한 내용이 많이 들어가게 되는 거지요.

이 유대인 노예들을 신바빌로니아를 멸망 시키고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왕조를 열었던 키루스 2세가 해방을 시켜주어 유대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키루스대왕은 고레스 대왕이라는 이름으로 성인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튼 유대교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게 사실이며 기독교도 유대교에서 파생된 종교이니 역시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기 622년에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하기 전 카라반 상인 시절에 많은 기독교인들과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상인들과 교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는 마호메트가 만난 기독교인들은 서기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축출된 아리우스파 기독교인들일 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이슬람에서는 예수나 마호메트는 신이 아닌 예언자일 뿐이므로 예수도 신으로 여기는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파와는 교리가 다르고 아리우스파의 교리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호메트는 조로아스터교인들과도 교류를 했던 것으로 보이는게 교리도 비슷한 점이 많아서 이슬람 사라센제국이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 시킨 후 이슬람교를 전파시킬때 페르시아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데 별다른 거부반응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유대교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고 유대교에서 기독교가 파생됐으며 기독교에서 개신교와 동방정교가 파생됐으니 이슬람이나 기독교계열의 종교들이 모두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읍니다.

 

이슬람이 창시되기 한참 전에, 콘스탄티누스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해 기독교를 공인하기도 전에 이란인 마니라는 사람에 의해 마니교가 창설되는데 마니교는 조로아스터교를 기초로 하여 기독교 그노시스주의와 불교의 교리까지 혼합해서 만든 종교로서 로마제국은 물론 북아프리카와 중국등 아시아에까지 전파가 되었습니다.

그외에도 중국 명나라 말기에는 백련교도의 난이 있었고 청나라 말기에는 태평천국의 난이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 있었지요.

서양에서는 위그노 전쟁,30년전쟁,십자군 전쟁 등이 있었지요.

영국에서는 헨리8세가 국교회로 개종하고 나서 그의 딸 메리에 의해 많은 개신교 교인들이 학살 당하기도 했지요.

미국의 역사는 제임스 1세의 종교탄압을 피해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이동한 것이 미국역사의 기원이 됩니다.

종교가 역사에 끼친 영향은 정말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이스라엘과 아랍의 종교적 대립은 제3차 세계대전의 불씨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 기승을 부리고 있는 IS(이슬람 스테이트)는 수니파 테러단체입니다.

이슬람은 수니파와 시아파 둘로 종파가 나누어지는데 약 85%는 수니파이고 시아파는 이란과 이라크 일부, 시리아 일부에서만 믿고 있읍니다.

마호메트에게는 2남 6녀가 있었는데 모두 죽고 파티마라는 딸 한명만 살아 남았는데 파티마는 알리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마호메트가 죽자 마호메트 후계자로 친구이자 장인인 아부바크르가 칼리프로 선출되는데 이어 우마르, 오스만 그리고 파티마의 남편 알리까지를 정통 칼리프 시대라 합니다.

알리사후 알리의 자손이 즉 마호메트의 혈족이 칼리프 지위를 이어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파가 시아파이고 선거에 의해 선출되야 한다고 주장하는 파가 수니파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마이야가문과 나중에 압바스 가문에 의해 칼리프는 왕조처럼 세습을 하게 됩니다.

둘다 수니파에 해당됩니다..

압바스 왕조는 나중에 징키스칸의 손자이며 쿠빌라이의 동생인 훌라구에게 멸망 당하지요.

아무튼 이 두 종파의 대립이 현재는 IS라는 테러집단을 낳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IS가 사람들을 많이 학살하고 무자비했던 것에 분노하지만 개인적으로 안심을 하고 있습니다.

IS는 수니파 집단인데 그들이 너무 잔인하여 같은 수니파 나라들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IS때문에 제 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을것 같아서입니다.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이스라엘 유대인들과 아랍 무슬림인들의 종교대립이 원인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유대인 이야기가 나왔는데 유대인은 스파라디 유대인과 아슈케나지 유대인 둘로 구분이 됩니다.

스파라디 유대인은 셈족계 유대인으로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로 디아스포라를 했던 셈족계 오리지날 유대인을 말하는 것이고 정작 지금 유대인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유럽과 미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유대인은 아슈케나지 유대인으로 혈통적으로 유대인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기원후 8세기경 흑해북안의 카프카스 지역에 카자르라는 왕국이 세워졌는데 투르크계 민족으로 추정이 되며 한때는 카스피해 서쪽의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쪽까지 영토를 넓혔던 왕국인데 당시 남쪽으로는 이슬람 사라센제국이 포진하고 있고 북서쪽에는 비잔틴과 프랑크 왕국이 자리 잡고 있어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 사이에서 침략을 당하지 않으려고 선택한 종교가 양 종교의 모태가 될 수 있는 유대교입니다.

10세기에 카자르 왕국이 망하고 그 후손들이 유럽전역에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히틀러에 의해 학살을 당한 바로 그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입니다.

아슈케나지 유대인이 투르크계 민족이며 투르크족은 돌궐족을 말하는데 동이족,흉노족,숙신,말갈,여진,만주족, 몽골족등과 더불어 몽골로이드계 인종입니다.

징키스칸의 유럽원정시 1/8이 몽골족이고 7/8이 투르크계 병사였다고 하니 우리로 보면 먼 친척이라 할 수가 있겠지요.

터키 사람들이 우리를 형제로 생각하는 것 처럼요.

아무튼 이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노벨상의 1/3을 휩쓸고 세상의 부를 다 가지고 미국을 꼭두각시 삼아 세상을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중세 유럽의 기독교 사회에서는 성경에 고리대금업을 하지마라는 내용이 있어서 그 일을 유대인이 하게 된 것이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대교 성전인 토라에도 고리대금을 금하는 내용이 있기는 있는데 형제에게 고리대금을 하지 말라라고 되어 있다고 합니다.

유대인 형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겐 고리대금업을 해도 된다는 거지요.

아무튼 유대인들은 돈 놀이를 해서 부자가 됩니다.

은행이라는 영어단어인 BANK도 유대인들이 베니스에서 돈을 빌려주고 기록을 하는 책상(BANKO)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사돈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게 인지상정인데 유대인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보니 유럽인들에게는 얼마나 배아프고 아니꼬왔겠읍니까?

히틀러의 유대인 홀러코스트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발상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미움과 혐오의 폭발인거죠.

19세기 중엽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이러한 유대인들을 비꼬아 천민 자본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합니다.

자본주의의 원리가 인간의 이기심을 기초로 하는 것이기에 요즘의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에 매우 적절한 표현이어서 많이들 사용하고 있는데 사실 천민자본주의의 첨단은 주식시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민자본주의의 첨단이 주식시장이라 천민적인 행위가 정당화된다고 보시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좀 더 이성적으로 고찰해보면 천민자본주의적인 천박한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식투자자들이 오히려 다른 사회에서보다 더 조심하고 이성적이고 문화적으로 행동해서 시장의 천박함을 배제 시키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는 교훈의 용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은 단지 필요한 것이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놈의 돈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가치들을 저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은 명상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고찰해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불교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잡설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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